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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HI
피자나라치킨공주 후기
이름 주*빈
메뉴명 피치세트 이용매장 경남대점
평점 평점 5점 만점에 5점 등록일 2017-03-12
제목 그 날의 기억... (문과 감성 주의)
끼니 때를 알리는 뱃고동소리..
나의 배는 파고 5m의 심한 풍랑을 만난 10만톤급 선박처럼 심하게 요동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 전 퇴근 길이었을까.. 피자와 치킨 사진이 들어간 브로마이드가 현관문 앞에 붙어있었다.
브로마이드 안에서는 예쁘장한 튀김 옷을 입은 치킨이 나를 유혹하며 마음 속 깊은 곳을 후벼파듯 찔러댔지만,
나는 이내 지난 달 월급을 상기시키고는 다음을 기약하며, 브로마이드를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1달만 참자' 라고 머릿 속으로 수차례 되뇌이며 무심한 척 냉장고에 브로마이드를 붙여 놓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저녁..
나의 배는 괴로운 듯 깊은 신음소리와 함께 내 시선을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는 냉장고로 결국 돌려놓고야 말았다. 아아..

'피자나라 치킨공주'

피자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치킨공주를 당장 구해오라는 듯, 나의 배는 뇌를 향해 연신 외쳐대며 나를 조종하려 하고있었다.
이성이 먼저냐 감정이 먼저냐 갑론을박을 하기도 전에 나의 손은 재빠르게 휴대폰으로 번호를 찍고 있었고...
그로부터 40분이 지난 후 초인종 소리에 문을 다급히 열어보니 시크한 표정의 배달원께서 양 손에 치킨과 피자를 들고 서 계셨다.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있던 내 표정과 달리 배달원분은 그 전 날 내가 무심한 척 냉장고에 브로마이드를 붙였던 것 처럼,
들고 있던 치킨과 피자를 무심한 듯 나에게 공수해주고는 내 지갑에 있던 황금 같은 배춧잎을 받으셨다.
그리곤 나와의 볼 일은 이제 모두 끝났다는 듯이 도도한 어조로 "맛있게 먹으세요" 란 한마디를 남긴 채 내 방을 급히 떠나갔다.

피자와 치킨을 오랜만에 마주한 그 날 저녁..
어쩌면 나는 그 날 이성을 잃었었는지도 모른다. 배달원 때문은 아니다. 지금 내 눈에 아른거리는 아름다웠던 그 녀석, 피자.
비발디가 아름다운 봄의 선율을 악보에 수 놓았 듯, 멋스럽게 늘어난 모짜렐라 치즈는 나의 입 안에 따스한 봄 기운을 선사해주었고,
나는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 기운에 동화되어서 피자 한 판과 함께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멋진 왈츠춤을 추었다.
하지만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아름다운 선율의 향연은 곧 끝나버렸고, 동시에 피자와의 춤사위도 끝나버렸다.
피자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지만, 피자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내 앞을 떠나갔고,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이 세상 튀김의 최고경지는 '치킨'이라고 자부한다. 그 중 후라이드 치킨은 튀김 요리에 방점을 찍었으며, 한 때 내 눈 앞에 놓여있었다.
닭다리를 먹은 이후 다른 조각들을 먹은 기억이 나는가? 그렇다면 치킨을 아주 천천히 음미한 것이다.
내 배는 그것을 허락치 않는다. 과거 2명의 동료들과 치킨 두 마리를 10분 내로 해치웠었던 적이 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아주 격렬했던 서로의 움직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뒤로 치킨은 음미하는 존재가 아닌 요란스럽게 움직이는 나의 턱뼈와 신명나게 격한 댄스를 추는 파트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미는 닭다리 한 조각으로 족하다.
하지만 피자나라에서 구해 온 치킨공주는 춤을 제대로 춰 보기도 전에 나의 입맞춤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어렸을 적 보았던 동화책에서는 왕자의 입맞춤에 공주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나는 왕자는 아니었나보다.

허무하다.. 그들과의 만남이 오랜만이어서였을까.. 타임머신을 탄 듯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배달원, 피자, 치킨.. 모두 그렇게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행복은 짧지만 그 추억은 영원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갑자기 그들이 그리워진다.. 따뜻한 봄의 기운을 선사해 주고 사라져버린 피자, 나의 턱뼈와 신나게 춤을 출 뻔했던 치킨공주..
심지어 배달이 밀린 다음 장소를 향해 바삐 떠나 갔던 배달원까지..
이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함께한 추억이 담긴 사진을 다시 꺼내 보니 그들이 더더욱 그리워진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들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날엔, 그 날 만큼은 이성을 단단히 붙잡고 천천히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오래토록 보내고 싶다..



<그들과 함께 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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